안녕 과거의 나야. 오늘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늘 “그래, 알겠어”라고 말하던 너.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았고, 도움을 요청받으면 손부터 내밀던 너. 그렇게 살면서 얼마나 스스로를 잃어갔는지, 지금의 나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 이제는 너를 위로해주고 싶어.
그때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맞춰줬을까?
그때의 너는 늘 ‘괜찮다’고 했지. 아프다는 말도, 힘들다는 표현도 참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부탁을 거절하면 미움받을까 두려웠고, 한 번 거절하면 관계가 틀어질까봐 조마조마했지. 그래서 늘 먼저 양보하고, 먼저 이해하려 했고.
그렇게 하면서 너는 점점 작아졌어. 사람들은 고마워했을까? 어떤 이들은 오히려 더 요구했지. 네가 괜찮다고 하니까 더 기대고, 네가 묵묵히 참으니까 더 무시했어. 하지만 너는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잖아.
그런 너에게 지금의 나는 말해주고 싶어.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고. 진짜 좋은 사람은 모든 걸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너는 몰랐던 거야.
지금 돌이켜보면 너는 정말 잘했어. 아무도 너에게 ‘거절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그 시절, 네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지금은 내가 안다.
그 침묵은 상냥함이 아니었어
넌 참 착한 사람이었지만, 그 착함 속엔 참 많은 침묵이 있었어.
불편해도 말하지 않았고, 억울해도 괜찮다고 했지. 그게 배려고 성숙함이라고 믿었을 거야. 하지만 사실 그건, 상대를 배려하려다 스스로를 지우는 선택이었어.
예전에 네가 정말 피곤한 날, 친구가 갑자기 만나자고 했던 적이 있었지. 사실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혹시 내가 거절하면 섭섭해할까?'라는 걱정이 앞섰지. 결국 나가서 웃으며 대화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지쳤는지 기억나.
그때 넌 대단했어. 그렇게 지쳐 있으면서도 ‘다행이다, 친구가 즐거웠으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 하지만 너도 돌봄이 필요했잖아. 누군가에게 괜찮은 척을 멈췄더라면, 그 순간 너는 조금 더 살아있음을 느꼈을지도 몰라.
침묵이 꼭 착함은 아니야. 침묵은 때로는 두려움이었고, 때로는 네가 사라지는 방법이었지. 지금의 나는 그걸 안다. 그래서 네게 말해주고 싶어.
이제는 말해도 괜찮아, 거절해도 괜찮아, 넌 여전히 좋은 사람이니까.
이제는 너의 편이 되어줄게
이제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 감정을 숨기지 않는 훈련, 내가 나를 가장 먼저 돌보는 방법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항상 네가 떠올라.
그 시절 너는 외로웠고, 누군가 네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랐을 거야. 이제는 내가 네 마음을 읽고 있어.
너는 잘못한 게 없어. 그저 몰랐을 뿐이야. 네가 그렇게 해온 이유는 너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고 싶어서였어. 그 마음, 그 애씀은 정말 소중했어.
이제부터는 내가 너의 편이 되어줄게. 누군가 부탁했을 때, 예전 같으면 무조건 수락했겠지만, 이제는 나의 에너지를 먼저 체크할 거야. 때로는 거절할 것이고, 그로 인해 불편한 순간이 오더라도 내가 너를 지킬 거야.
예전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폈지만, 이제는 너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내가 되어줄게. 그게 곧 우리가 조금 더 가벼워지는 길일 테니까.
거절하지 못했던 너는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어. 다만, 너무 배려했고 너무 외로웠을 뿐.
이제는 너를 이해하고, 네 마음을 존중할 줄 아는 내가 되었어.
그러니 다음 번엔 조금 더 솔직해져도 괜찮아. 나는 늘 너의 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