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부탁을 거절한 후 미안함에 시달렸다. 내 사정을 말했는데도 뭔가 잘못한 기분. ‘거절’은 언제부터 나쁜 사람의 신호가 되었을까?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연습을 시작해봤다. 그리고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왜 미안할까? 내 안의 착한 사람 강박
거절한 뒤에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던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실망을 안겼다는 죄책감, 혹시 나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배려심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감정은 어디서 온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좋은 아이’라는 인정을 받으며 자랐다.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고, 부탁은 잘 들어주고, 늘 배려하는 사람. 그렇게 칭찬받았지만 그게 꼭 행복했던 건 아니다. 누군가를 거절하면 ‘기대에 어긋났다’는 두려움이 나를 옥죄었다.
그래서 알아차렸다. 거절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은 항상 들어줘야 한다’는 믿음이 나를 무겁게 만든 것이라는 걸. 감정을 정리하면서 그 믿음을 하나하나 재구성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도, 진심인 사람이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절한 나를 스스로 안아주는 법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절한 후의 감정을 나 자신에게 설명하는 연습이었다. 단순한 “미안해”가 아니라, “나는 지금 나의 리듬을 지켰어”, “나는 내 한계를 존중했어”라는 식의 말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갑자기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장시간 상담을 요구했을 때, “지금은 힘들어. 내일 이야기하자”라고 말한 후에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쉬어야 할 시간”이라는 문장을 되뇌며 마음을 다독였다.
또한 상대가 나의 거절에 서운함을 표현해도, 그 감정을 내 책임으로 전가하지 않는 연습도 필요했다. “그 사람이 실망했을 수 있지만, 그건 나의 ‘책임’이라기보단, 그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거리일 뿐”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나를 지켜줬다.
거절은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리듬을 보호하는 방식임을 자주 상기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지키는 사람
이 연습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단순하다. 거절은 나쁜 행동이 아니라, ‘건강한 경계선’의 표현이라는 것.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는 결국 나를 소모시키고, 그로 인해 관계도 왜곡된다. 오히려 때로는 ‘단호한 거절’이 관계를 더 오래 유지시킨다.
지인 중 한 명은 매번 약속을 정해놓고도 자주 바꾸곤 했다. 예전엔 그 상황에서도 묵묵히 맞춰주었지만, 한 번은 “그렇게 자주 바꾸면 나도 일정이 힘들어져. 다음엔 확실할 때 보자”고 말한 적 있다. 그 후 그 지인은 내게 더 신중하게 약속을 잡게 되었고, 관계도 이전보다 더 안정적이 되었다.
거절은 경계를 보여주는 방법이며, 그 경계가 있어야 진짜 존중이 가능하다는 걸 체감했다. 이제는 “싫다”, “어렵다”, “그건 안 돼” 같은 말도 내 어휘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더 이상 나쁜 사람이 될까 두렵지 않다. 나는 나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을 뿐이니까.
거절을 했다고 해서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관계는 때로 단호함에서 신뢰를 얻는다. 나는 더 이상 ‘모든 부탁을 들어줘야 착한 사람’이라는 믿음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거절도 존중이고, 나를 아끼는 방식이라는 걸 배운 지금, 나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