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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이 어려운 이유, 나를 지치게 만든 ‘착한 사람 콤플렉스’

by 인포리엔 2025. 7. 11.

“싫어요”라는 말보다 “좋아요”가 편했다.
그건 내 진짜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고 돌아보니, 나는 늘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나를 쥐어짜며 살고 있었다. 이 글은 그 강박을 알아차리고나서의 기록을 포스팅해보려고한다.

거절이 어려운 이유, 나를 지치게 만든 ‘착한 사람 콤플렉스’

‘싫다고 말하면 나쁜 사람일까?’라는 오래된 믿음

어릴 때부터 나는 ‘착한 아이’였다.
부탁을 들어주고, 속상해도 웃고, 싫은 말은 삼켰다.
그게 예의고, 배려고, 어른스러운 거라 배웠고, 그런 ‘착함’은 시간이 갈수록 나를 무겁게 했다.
직장에서는 야근을 부탁해도 웃으며 “괜찮아요”라 하고, 친구가 무리한 부탁을 해도 "응, 할게"라고 답했다.
진짜 내 감정은 그 뒤에 숨겨진 채, 상대가 실망하지 않도록 하는 게 내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내가 거절을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거절 = 나쁜 사람’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호함은 싸움으로, 자기주장은 민폐로 느껴졌다.
그래서 항상 타인의 눈치를 보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결국 그 착함은 진짜 ‘좋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불안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거절하지 못한 대가로 내 시간, 체력, 감정은 계속 줄어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정말 착하다는 건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한 건

 

착함의 탈을 쓴 불안 – 나를 지치게 한 인정욕구

나는 왜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거기엔 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누군가 “너밖에 없네”라고 말하면 뿌듯했고,
“너 진짜 착하다”는 말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진짜로 원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내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조건부 안정감이었다.

실제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내 욕구를 억눌렀다.
원하지 않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배려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거절하면 나를 싫어하겠지’라는 불안이 내 행동을 지배했다.
그리고 이 착함은 점점 피로감을 동반한 관계로 이어졌다.
항상 내가 맞춰야 했고, 상대는 점점 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자주 버리고 있었다.
그게 더 이상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단지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거절하지 못하면 배제될 것’이라는 사회적 경험들이 만든
작고 깊은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인지한 후부터,
나는 그 틀을 부수는 연습을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나’로 존재하기 위한 연습

착한 사람이 되는 대신, 진짜 나로 존재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 시작은 작았다.
누군가 “오늘 저녁에 잠깐 만나자”라고 했을 때,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서”라고 솔직히 말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관계가 멀어질까 봐 걱정됐지만,
상대는 오히려 내 말에 고마워했다.
“그래, 솔직해서 좋다. 다음에 보자.”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깨달았다.
거절은 관계를 해치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술일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 감정을 드러내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무조건 맞추기보단, 내가 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거절을 하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자문한다.
“나는 진짜 이걸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이 “아니요”라면,
나는 조심스럽고도 단호하게 그렇게 말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굴레를 자각하고, 감정의 중심을 나에게 되돌려놓는 훈련이 반복되면,
나는 조금씩 덜 착하고, 더 나다워진다.

 

거절은 상대와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나와 가까워지는 과정이었고 좋은 사람이라는 허상 대신, 솔직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착한 사람보다 진짜 나로서 살아가려는 연습을 계속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