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는 늘 순응하는 사람이었다.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강박, “네”라고 말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믿음이 오랜 습관이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아니요’라고 말했다. 그 하루를 기록해보려 한다.
그 말 한마디 전까지, 나는 왜 그렇게 참았을까...?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아니요’는 나에게 혁명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조직 안에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살았다. 누군가 일이 생기면 늘 가장 먼저 손을 들었고, 야근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일을 거절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은근히 깔려 있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늘 순응해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상사는 퇴근 직전 갑작스레 업무 하나를 더 맡기려 했고, 나는 입버릇처럼 “네, 알겠습니다”를 말할 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일을 맡으면 오늘 약속은 또 취소겠지.’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 짧은 침묵 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오늘은 어렵습니다. 내일 오전에 처리하겠습니다.”
상사는 놀란 표정이었다. 나 자신도 낯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몸과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를 위해 업무의 경계선을 그은 것이다.
거절 이후의 침묵, 분위기 변화에 대한 솔직한 체감
거절의 여운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 한마디 이후, 사무실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이전엔 늘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던 내가 처음으로 “아니요”를 외쳤기 때문에, 동료들과 상사는 다소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어떤 이는 나를 이해하는 듯했고, 어떤 이는 의아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특히 상사는 내게 다시 한 번 확인하려 했다.
“진짜 오늘은 힘든 거야?”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네, 오늘은 개인 일정이 있어서 힘듭니다.”
그 이후의 침묵은 처음엔 견디기 어려웠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괜히 관계만 껄끄러워진 건 아닐까.
스스로 수없이 되묻는 하루였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나를 응원해주는 동료도 있었다.
“오늘 멋있더라. 나는 아직 못하겠던데.”
이 말은 마치 나에게 작은 훈장이었다.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겠구나.’
거절은 갈등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싫다’고 말할 줄 아는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거절은 직장 안에서 오랜 시간 금기처럼 여겨져 왔다. 특히 조직 내 서열과 관계, 평가가 엮인 구조 안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하루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조건 거절하겠다는 게 아니라, 업무의 우선순위와 내 컨디션을 기준 삼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지금 이 일이 정말 급한지’,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이 판단을 먼저 하고 응답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업무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해야 할 일은 더 집중해서 하게 되었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분명히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거절’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의 나는 늘 주변의 시선에 맞춰 움직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나의 시간을 책임진다”는 감각이 생겼다.
직장에서 거절은 어쩌면 가장 어렵고 가장 필요한 기술이다.
그 기술을 익히는 첫날, 나는 비로소 진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 셈이었다.
직장에서의 첫 거절은 나에게 많은 감정을 남겼지만, 결국 나를 지키는 힘이 되었다.
‘아니요’라는 말은 단절이 아니라, 존중과 조율의 시작일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용기 내어 나만의 경계를 그어본다.